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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29 숨은 신

2010/07/29 01:01, 글쓴이 LuNa
 숨은 신 - 루시앙 골드만 저/ 송기형 역/ 연구사

 왜 라신의 비극이 그토록 내 취향에 부합한다고 생각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난 고등학생 시절 파스칼의 『팡세』에 빠져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많은 것들에 대해 나의 취향을 피력했었고, 지금은 그때와는 사뭇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지만 본질적인 면에서는 변한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골드만이 라신과 파스칼, 루카치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한 비극적 세계관의 모든 것이 나를 매료한다. 더불어 작년에 문피아에서 연재될 때 그렇게 열광했던 『레드 세인트』와 『루나틱 언밸런스』가 이런 비극적 세계관을 놀라울 정도로 ㅡ 상당히 노골적인 수준으로 ㅡ  투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고 고개를 끄덕인다. 아, 정말 취향은 어디 가질 않는구나. 지금은 루카치의 『영혼과 형식』을 읽고 있다. 이걸 읽고 나면 번역되지 않은 『숨은 신』의 뒷부분을 마저 읽어야지. 뭐랄까, 읽는 순서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디까지나 비전공자이니 기호와 흥미와 변덕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
2010/07/29 01:01 2010/07/29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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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읽은 베스트 도서 : Making Money

2009/12/27 17:02, 글쓴이 LuNa
 올해를 그냥 보내긴 섭섭해서 이번에도 한 해 중 읽은 베스트 도서를 꼽아보기로 했다. 지금 돌이켜 보니 의외로 신간을 많이 챙겨 보지는 못했다. 재독한 작품도 꽤 있고. 기억나는 텍스트를 꼽아보자면 다시 읽은 진산의 『사천당문』 1*2부, 이번에 멀티 문학상을 수상한 콜린님의 『절망의 구』, 무시무시한 인문학적 소양으로 무장한 스토리텔러 댄 시먼스의 『히페리온』, '뮤지컬 원작 소설'이라는 첫인상을 완전히 깨부수고 정치적 메타포와 사정 없는 독설로 루나양을 후려친 그레고리 머과이어의 『위키드』 정도 되겠다. 그리고 암울했던 2009년을 그나마 웃으며 보낼 수 있게 해주었던 테리 프래쳇의 《디스크월드》 시리즈. 30권이 넘어가는 방대한 시리즈를 처음부터 볼 자신이 없어서 무작위로 골라 보고 있다. 지금까지 읽은 건 채 열 권이 안 되지만 언젠가 다 읽을 날이 오겠지. 그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Making Money』를 올해 읽은 베스트 도서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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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ing Postal』에 등장했던 전직 사기꾼 모이스트 폰 립빅이 다시 주인공으로 나온다. 전작에서 사형수->금빛 수트의 우체국장으로 변신한 모이스트는 백 년 가까이 버려져 있던 우체국을 화려하게 부활시킨 앙크-모포크의 인기인이 되어 있다. 그러나 우체국이 정상화되자 젖먹이 때부터 가지고 있던 그의 크리미널 마인드는 슬슬 반기를 들기 시작하고, 때마침 우리의 총독님은 그에게 위험천만한(?) 은행 일을 제안한다! '저는 곧 결혼할 몸이어요! 안정적인 직장이 최고지요!'라고 발을 빼던 그는 어느새 사기꾼으로서 천부적인 재능인 입방정 + 크리미널 마인드 콤보로 인해 위험의 중심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전작에서 우표의 발명으로 디스크월드의 체신 사업에 혁신을 불러일으킨 그는, 우표가 공공연히 화폐 대용으로 쓰이고 있는 사실에 착안해 종이 화폐를 고안한다. 그러나 대대로 은행을 소유해온 앙크-모포크의 거부 집안 래비쉬 가문의 음모와 시민들의 금 본위 사고방식의 저항도 만만치 않고, 설상가상으로 사기꾼이었던 모이스트의 과거를 아는 악당이 등장하는데!

 테리 프래쳇의 장점으로 현란한 패러디와 배꼽 빠지는 슬랩 스틱 코미디, 천진하고 우스꽝스러운 캐릭터 등을 꼽을 수 있겠지만, 이 책을 보니 소재를 가공하는 능수능란함도 빼놓을 수 없겠다. 기초적인 경제학과 약간의 역사적 사실 ㅡ 어쨌든 현실과 닮은꼴이니까 ㅡ 을 소재로 이렇게 코믹한 글이 나올 수 있다니! 코믹할 뿐만 아니라 교육적이기까지 하다! 이대로라면 테리 프래쳇이 살아있는 한 디스크월드 시리즈는 소재가 떨어지는 일 없이 백 권이라도 가능할 것 같다. (참으로 바람직하군.) 게다가 '판타지 세계에서 돈 만드는 이야기'가 뜬금없이 느껴지지도 않는데(주1), 『마법의 색』에서 두송이꽃이 처음 앙크-모포크에 발을 들였을 때 개념 없이 금화를 펑펑 써대는 장면이라든지, 『Interesting Times』에서 아가티안 제국으로 넘어간 린스윈드가 처음 지폐를 대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장면, 전작에서 모이스트가 우표를 고안해내는 과정 등이 이미 이 작품을 예고하고 있는 것 아니었나 싶다. 어쨌든 작품에 대해서는 은근히 상 복이 박한 테리 프래쳇은 이 작품으로 2008년 로커스 상을 받았다고.

 머리를 잘 굴리고 혓바닥은 더 잘 놀리는 모이스트 폰 립빅은 디스크월드 시리즈에 등장하는 주인공치고는 운이 억세게 좋은 편인데, 전작에 비하면 역경도 별로 없고 어찌 되었든 종국에는 모든 일이 술술 풀린다는 점이 약간 아쉽긴 하다. 그렇다고 운수대길 만사형통 영지발전물에서 가끔 나오는, 명령 한 번에 돈을 뚝딱 만들어 유통시키는 장면과 비교하면 섭섭하다. 주인공에게 역경이 별로 없다고는 해도, 작가가 충분한 고려 없이 몇 문장으로 설명해 버리고 넘어가는 것과 디테일을 묘사하면서도 '왜 심각해지시나? 한 번 웃을 타이밍이라네'라고 눈을 한 번 찡긋하며 코믹함으로 정리해주는 것을 도매금으로 묶어서 취급할 수야 있나. 그래도 그 점이 못내 아쉬웠던 것은 왠지 모이스트가 디스크월드 시리즈에서 다시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는 힘들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전작에서 로드 베티나리는 그에게 우체국을 되살리라는 임무를 내렸고 그는 성공했다. 이번에는 은행에 들어가서 돈을 좀 굴려보라는 말에 그렇게 했다. 로드께서는 다음엔 국세청에 보내볼까 고려중이시다. 같은 패턴이 반복되면 아무리 테리 프래쳇이라도 참신함을 살리기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까. 게다가 모이스트는 크리미널 마인드를 잠재워주는 위험한 누님과 결혼할 예비 신랑이니까(...)

 아, 그리고 끝으로 한 마디 더. 앙크-모포크에 로드 베티나리의 팬이 많다는 것은 매우 흡족한 사실이다. (주2) (앙크-모포크의 유일한 투표권자로서) 1인 1표제 민주주의의 강력한 수호자이시며 차갑고 명석한 두뇌와 강렬한 존재감의 소유자이신 우리 총독님은 능력도 좋으시지. :) 뱃속에 야망을 키우고 있는 자들은 많지만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이 앙크-모포크를 집어삼키려는 것이 아니라 로드 베티나리 그 자신이 되는 것에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로드 베티나리 워너비'들이 정신병동 하나를 다 채울 만큼 많다는 사실은 이미 로드의 빠슨이가 되어 버린 루나양에게 매우 고무적이었다. 이미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쓰는 심경으로 로드를 보고 있음을 확실히 깨달아버렸다고나 할까. 어쨌든 암살자와 강도, 머리 빈 영웅들이 활보하는 앙크-모포크에서 오래오래 살아남아 전제정치를 펼쳐주시기 바란다(...)


1) 많은 사람이 루나양이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보고 재테크 또는 경영을 공부하는 것으로 오해했다가, 판타지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황당해했다.
2) 누구씨를 위해 덧붙여 둔다. 언젠가 제레미 아이언스가 로드 베티나리로 출연한 적이 있다.
2009/12/27 17:02 2009/12/27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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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읽은 베스트 도서 : 시르트의 바닷가

2008/12/31 20:14, 글쓴이 LuNa
 작년에 이어 한 해 동안 가장 감명깊게 읽은 도서를 꼽아보기로 했다. 올해는 장르소설 신간도 유난히 많았고, 특히 일본 미스터리를 많이 접한 해였다. 비문학은 다른 해보다 적게 읽었고, 대신 고전파 희곡과 라신 관련 비평을 찾아 읽었다(라신 비극의 러브 라인은 언제 읽어도 취향이다. 연애 세포가 비뚤어졌으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제치고 뽑은 것은 바로 이 책.

시르트의 바닷가
줄리앙 그라크 지음, 송진석 옮김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대산 세계문학총서만큼이나 좋아하는 기획이다(작품 목록만 보면 후자가 더 마음에 들지만 아무래도 다양성과 수록량에서는 전자가 압도적이다). 원래 책을 살 때에는 장르, 작가, 출판사 등등 따지면서 고르는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워낙 좋은 작품들을 많이 내고 있으니 믿고서 모르는 작가의 작품을 골랐다가 가끔 예상을 넘어서는 어마어마한 작품을 만날 때가 있다. 『시르트의 바닷가』도 그런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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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주위를 사막으로 두르고 외부와 단절된 채 300년을 평화롭게 버텨온 오르세나. 그러나 이 나라가 누리는 평화로움은 무겁고 답답하다. 작가 줄리앙 그라크는 작품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오르세나의 권태를 그려내고 있는데,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가랑비에 옷 젖듯이 독자로 하여금 한 줄 한 줄 읽어나갈 때마다 저도 모르게 그 무겁고 답답한 공기에 침잠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형용사나 시각적 묘사가 아닌, 개념어와 추상적 표현으로 이런 정취를 살려내는 세밀한 필력이 놀랍다. 덕분에 독자라는 제3자의 입장에서 작품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배경과 분위기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이야기와 오르막내리막을 함께 하는 진귀한 경험 이야기가 흥미진진한 나머지 자신을 인물과 동일시하게 되는 것과는 다르다 을 할 수 있었다.

 수도의 '상위의 권태'에서 벗어나 남쪽 오지로 부임한 귀족 청년 알도가 시르트의 바닷가에서 건강한 행복감을 만끽하는 장면에서마저도 나른하고 지루한 정취는 변하지 않는다. 작품의 처음부터 이어진 이런 나른함이 깨진 것은 알도가 300년 전에 오르세나와 휴전을 했고, 그 이후 전혀 교류가 없던 이웃 나라 파르게스탄과 접촉을 시도할 때였다. 말로만 들어왔던 '적국'과의 대치 상태가 시르트에서는 추상적으로나마 남아 있음을 알고 묘한 흥분을 느낄 때부터 작품의 공기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고, 알도가 수도에 있을 때는 전설로만 여겨졌던, 시르트에서조차 과거의 그림자에 불과했던 '적국'이 드디어 그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 이야기는 급반전되리라 생각했다. 생각했던 급반전은 없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는 듯 일상의 권태를 누리고 있는 수도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시르트에서는 무수한 소문과 더불어 묘한 움직임이 생겨난다. 주목할 점은, 종말의 예언에 사람들이 보이는 다양한 반응 공포, 분노, 불안 등 에는 공통적으로 어떤 '기대감'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체화되는 전란의 전망 앞에서 알도는 연인 바네사와 보안평의회의 다니엘로에게 반발하지만, 세월에 풍화되어 가던 도시의 숙명을 깨닫는 순간 평온과 희열을 느낀다. 그들은 이제 침묵 속에 다가올 전쟁을 기다린다.

 왜 오르세나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파멸을 불러올 지도 모르는 전쟁을 기다리는가? 작중에서 바네사는 권태에 사로잡혀 그저 '존재할 뿐인' 도시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계속해서 알도에게 이해시키려고 한다.

 "…알도, 자기는 이런 꿈 꾼 적 없어? 지구가 홀연 자기 한 사람만을 위해, 그리고 더욱 빠른 속도로 도는 꿈 말이야. 이 광란의 질주 속에서 폐가 약한 짐승들은 그 자리에 낙오되어 버리지. 이들은 미래를 좋아하지 않는 짐승들이야. 그러나 숨쉬기조차 힘든 속도를 견디는 심장이 자기 안에 있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의 시선과 본능에 죄와 파멸로 보이는 것, 그것은 바로 이러한 도약을 방해하는 것이야. 단지 옆에 있기 때문에 함께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눈이 미치는 먼 곳을 한번도 제대로 바라보지 않은 사람일 게 분명해.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저주받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살 수 있도록 해주는 먼 곳을 차단하기 위해 그 도시들이 탄생하고 건설된 것처럼 여겨진다는 이유 때문이지. 이런 도시들은 편안한 도시들이야. 하지만 어디에서도 세계는 보이지 않고 오로지 쳇바퀴 속의 다람쥐처럼 자신의 바퀴만을 돌리고 있을 뿐이지. 나는 거리에서 사막의 바람이 느껴지는 도시만을 좋아해. 어떤 날은, 알도." 바네사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려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르세나를 심하게 원망하기도 했어. 거기엔 늪의 냄새밖에 없어. 나는 이따금 도시가 지구의 자전을 방해한다고 생각하기도 했어." - 331~332p
 그러나 그라크는 이를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 자체에 구현해내려고 한다. 그라크가 작품 전반에서 그리고 있는 오르세나의 인상이 얼마나 나른하고 지루하며 실체가 없는지는 이미 언급했다. 그런데 여기에 갑자기 '타자'로서 등장한 것이 '이웃 나라-적국'이다. 사실 작품의 거의 말미에 이르기까지도 과연 오르세나에 적이 있다는 것이 사실인지, 오르세나 외에 다른 세계가 존재하기는 하는지 명확하지가 않다. 적국에 대한 정보는 오히려 추상적이나마 뚜렷한 인상을 가진 오르세나에 비해 거의 없다시피 한다. 그러나 그때까지 허깨비에 불과했던 '적'이 마침내 실체를 갖추어 모습을 드러낼 때, 자기완결적이던 오르세나의 견고한 일상이 무너진다. '이렇게, 그들이 오는군요!'라고 외치는 알도의 대사에서는 전율마저 느껴진다.

 『시르트의 바닷가』를 읽으면서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느릿하고 차분한 서술에, 대부분의 묘사가 추상적인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상은 떠오른다는 것이 신기하다. 역시 능력있는 작가는 다르다 사건 위주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서인 것 같다. 그러나 완독 후의 인상은 마치 이스마일 카다레를 처음 만났을 때만큼이나 강렬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비로소 크게 숨을 내쉴 수 있을 정도로. 올해뿐만 아니라 몇 년간 읽은 책 중 최고다.
2008/12/31 20:14 2008/12/3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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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덴바덴에서의 여름 - 레오니드 치프킨

2008/12/26 19:42, 글쓴이 LuNa
바덴바덴에서의 여름
레오니드 치프킨 지음, 이장욱 옮김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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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전 손택이 서문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집어들게 한 책. 읽고 나니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중에서 개인적 선호 순위 5위 안에 들어갈 만하다. (나머지는 백 년의 고독과 시르트의 바닷가, 안개, 변신 이야기) 줄거리는 별 게 없다. 작가 치프킨의 분신이자 화자인 '나'는 기차에 앉아서 도스도예프스키의 두 번째 아내 안나의 회상록을 펼친다. ㅡ "나는 왜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가?"라고 뇌면서. 그리고 그(도스도예프스키)와 안나의 여행에 대한 매우 사실적인 묘사와 '나'의 의식이 교차한다. 바덴바덴에서의 두 내외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도스도예프스키의 죽음까지를 조명하고 있지만, 그 과정이 특별히 드라마틱하지는 않다. 그저 러시아 작가의 변덕과 강박증, 도벽에 반복되는 좌절과 궁핍, 부부간의 서글픈 애정을 매우 인간적인 연민과 애착을 담아 그려내고 있을 뿐이다.

 치프킨은 소련 출신의 지식인으로, 낮에는 의사로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쓰는 성실한 작가였지만 생전에 단 한 줄의 소설도 출판해 본 적이 없으며, 오히려 주위의 적대적인 시선하에 글 쓰는 것을 들킬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서방으로의 망명은 번번이 좌절되고 사회적인 압력이 더해가는 와중에도 묵묵히 글을 썼다는 치프킨은, 작가로서 자신의 글을 결코 책으로 낼 수 없을 거라는 현실 앞에서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아마도 남에게 절대 보여줄 수 없을 거란 이유로 좌절감을 안겨주었을 그의 작품이 그에게는 동시에 위안이 아니었을까. 이 작품 안에서 치프킨은 분신인 익명의 화자의 입을 빌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역시 고통받는 한 사람의 인간이었던 대문호의 모습을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도스도예프스키가 살았던 시대 상황의 격변, 투르게네프 등 다른 러시아 작가들과의 불화, 그리고 여담으로 또 한 명의 작가 솔제니친의 이야기가 어우러지며 독자 눈앞에 그려지는 도스도예프스키의 모습은 존경받는 대문호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우울과 좌절, 강박감에 시달리는 자존심 강하고 괴팍한 인물로, 아내 안나의 절대적인 헌신과 애정에서만 위안을 얻는 인간이다. 치프킨과 도스도예프스키는 살았던 시대도, 혈통도, 성격도 다른 사람이지만 깊은 애정과 숭배를 바탕으로 섬세하게 그려낸 대문호의 모습에서는 진한 인간적인 동질성이 느껴진다. 이렇듯 두 이야기를 대위적으로 엮어내는 놀라운 솜씨 덕에 책을 덮을 즈음에는 어느새 독자의 마음속에 작가 대 작가로서 마주 보고 서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끝내 생전에 발굴되지 못한 작가와 그의 절망을 생각하면 우울하기 그지없지만, 손에 만져지는 따뜻한 감성이 묻어나는 작품. 섬세하고 사실적인 상상력과 도스도예프스키에 대한, 더 나아가 그 정열적인 러시아 문호조차 포용하지 못했던 소외된 자들에 대한 인간적인 애정이 담겨 있다. 강력 추천.
2008/12/26 19:42 2008/12/26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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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읽은 베스트 도서 : 증언

2007/12/30 23:17, 글쓴이 LuNa
 여기저기에서 재미로 2007년 베스트를 꼽는 분위기라 나도 재미로 한 번.

 2007년은 『눈뜬 자들의 도시』나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마일즈의 전쟁』 등 내가 특별히 애착을 가지고 읽었던 책이 많이 나온 해다. 하지만 올해 '나온' 책이 아니라 올해 '읽은' 책 중에서 고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주저 없이 이 책을 꼽았다.

증언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회상록
솔로몬 볼코프 편저, 김병화 옮김/ 이론과실천

 원래 자서전이나 회고록 같은 책은 손이 잘 안 가는데 올해에는 마르케스 자서전이 나오기도 했고, 평소보다 자전적인 글들을 많이 읽었던 것 같다. 특히 이 책은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보다 더 즐겁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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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스타코비치는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대신 그 지인들의 일화나 약간의 문화 비평, 당시 소련 사회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추억 속에서 미화된 인물 묘사는 아니다. 오히려 그의 말을 통해 구축된 그들의 이미지는 희화화되어 있으며, 과장된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 이미지는 내가 이제껏 다른 자료들을 통해 얻었던 어떤 지식보다 생생하고 개성이 넘치는 것들이었다. 그의 스승 중 하나였던 글라주노프에 대한 회상은 특히 감동적이었다. 그가 소개하는 글라주노프의 일화는 사실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것이 많은데, 그럼에도 인간 됨됨이를 훼손함이 없고 오히려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이 담뿍 묻어나서 마음이 훈훈해졌다. 이 러시아 음악의 거장이 자신의 걸출한 제자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었는지를 이 글로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은 경험이 쇼스타코비치의 음악 세계, 그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 무엇보다 귀중한 자료가 되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혹자는 이 책에서 발견한 반공주의 때문에 위작이 아닌가, 위작이 아니라도 편저자 볼코프 자신의 생각이 더 많이 들어간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나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그가 반공주의자였나 아니었나가 아니다. 그는 전제군주제이든, 공산주의든, 천민자본주의든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예술을 도구로 이용하는 권력에 반발했다. 무소르그스키와 함께 대표적인 유로지비로서 온 세상을 향해 비웃음을 보냈던 그지만 한편으로는 음악이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보다 인간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이제서야 로스트로포비치의 말처럼 '러시아의 비밀스러운 역사'라는 그의 음악을 선명하게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2007/12/30 23:17 2007/12/30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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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인생의 이야기 - 테드 창

2007/05/27 13:25, 글쓴이 LuNa

 경제학원론 레폿 쓰기 싫어서 뭉기적거리고 있다가 레폿이라는 것을 써본 지 백만 년(작년 겨울에 쓰고 안 썼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전에 썼던 레폿들을 꺼내서 훑어보는데 이런 것이 나왔군요. 지난 해 <환상 문학의 세계> 수업에 제출했던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 비평입니다. 다시 읽어보니 부족한 부분이 많아 새삼 부끄러워지지만 나름대로 재미있는 부분도 있어 발췌하여 올려둡니다. 큰 목차 넷 중 둘째 부분입니다. (각주는 인용주만 괄호 안에 간략하게 표시함으로 대체하였음.)



(전략)
 문학은 일차적으로 음악과 함께 시간적인 예술의 범주에 속한다. 특히 소설이 인간 체험의 한 측면을 드러내어 보여준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소설의 주제와 형식이 시간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문학의 주제는 삶의 진행, 육체적이건 정신적이건 간에 시간 속에서 진행되는 사건, 시간 속에 위치해 있으면서 여러 가지의 시간 감각을 가지고 있는 작중인물 등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Mendilow). 그러나 여기에서는 문학에서 시간 자체가 차지하는 철학적 의미에 대한 깊은 논의는 하지 않을 것이다. 「네 인생의 이야기」에 나타나는 시간은 마이어호프가 제시하는 문학에서의 시간의 제 측면의 범주에 속하지 않으며, 그가 말하는 시간의 의미에 대해서도 특별히 천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다음에서는 「네 인생의 이야기」에 나타나는 시간적 요소가 이 작품의 구조와 주제 구현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알아보고,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어서 읽기

2007/05/27 13:25 2007/05/27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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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판타스틱> 창간호

2007/04/30 17:40, 글쓴이 LuNa
 정기구독 신청해서 방금 받았습니다. (배송은 우체국 택배였습니다. 정기구독하실 분은 참고하시길.)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서 잠깐 훑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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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창간호 특별 선물 티셔츠 입니다. 표지는 동그란 구멍이 뚫린 노란색 종이를 젖히면 원래 일러스트를 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것은 배송 중에 그랬는지 책 중간 부분이 약간 세로로 찢겨나가 있네요.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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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30 17:40 2007/04/30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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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SF 2호가 왔네요 :)

2006/11/23 00:12, 글쓴이 LuNa
 2년 만에 발간된 과학소설 무크지 Happy SF 2호가 오늘에서야 도착했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1호에 비해 많이 두툼해졌다는(1.5배 정도?) 사실이 첫째 기쁨을 안겨주었고, 보다 길어진 수록 작품 목록도 기쁨을 더해주었습니다.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의 중편(「슬픔의 산맥」) 한 편도 수록되어 있고, 무엇보다 창작 SF가 여섯 편이나 실려 있어요! 게다가 권말 부록인 「국내 출판된 SF에 대한 모든 것!」의 친절함에는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직 본격적인 탐독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책장을 넘기던 중 「스윙 바이」라는 단편에 눈길이 가더군요. 그래서 그 글부터 읽었는데, 와아, 대단한 유머 감각입니다. 농도 짙은 서술에 얼굴이 뜨끈해지기도 하지만, 약간 짓궃은 유머와 지나치게 무겁지 않은 잔잔한 감동이 공존하고 있는 글이었습니다. 다른 단편들은 어떨지 더욱 기대되네요. 어서 지금 읽고 있는 닐 스티븐슨의 『바로크 사이클』을 끝내야 할텐데요, 흑흑.
2006/11/23 00:12 2006/11/23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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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퀘이크 - 커트 보네거트

2006/07/12 12:42, 글쓴이 LuNa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구나'라는 생각이 든 순간, 갑자기 억울해졌다. 아직 『태초의 밤』도, 『자동 피아노』도, 『챔피온들의 아침식사』도 읽지 못했는데 여기서 끝내버리다니. 멋도 모르고 이 책부터 집어 버린 자신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이 작품은 '마침표'의 느낌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이걸 먼저 읽고 비로소 커트 보네거트의 다른 작품들을 읽는다는 것은 엄청나게 몰상식한 짓이 될 것이다. 그는 『타임 퀘이크』를 통해서 그동안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들을 다 쏟아낸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이 작품을 끝으로 소설 창작을 그만두겠다는 결심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사족을 붙이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이 작품에는 보네거트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다른 작품들에서 그를 대변하곤 했던 킬고어 트라우트와 작가의 목소리인 '나'가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런 시선의 엇갈림 가운데 작가의 메시지는 보다 선명하게 다가온다.  현대 문명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인류의 어리석음을 비꼬는 것처럼 들리는 독설과 블랙 유머는 여전하다. 어떤 이는 보네거트에게서 나타나는 인간에 대한 혐오에 머리가 아파질 지경이라고 말하지만, 글쎄? 그의 빈정거림과 질책들은 오히려 애정의 표현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인간의 무지와 탐욕, 비열함과 잔인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너희들을 좋아해"라고 흐느낄 수밖에 없는 아일페사스처럼.

 나는 염세주의자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지만, 만약 있다고 해도 보네거트만은 그런 종류의 사람이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고? 그는 재미를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나는 그의 소설을 약간의 씁쓸함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유쾌하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아직 안 읽어본 그의 다른 작품들을 마저 읽는 일은 훨씬 나중으로 미뤄두어야겠다. 아무래도 이 마침표의 여운이 상당히 오래갈 것 같으니까.
2006/07/12 12:42 2006/07/12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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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다시 쓰기와 목소리

2006/04/19 02:38, 글쓴이 LuNa
『메데이아, 또는 악녀를 위한 변명』ㅡ 크리스타 볼프 지음, 김재영 옮김/ 황금가지
『페넬로피아드』ㅡ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진준 옮김/ 문학동네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루나양에게 신화는 무한대의 창조력을 지니고 있는 어떤 것이다. 수천 년 동안 그 신비로운 이야기들로 수많은 사람들을 홀린 것도 모자라, 오늘날에 와서도 끝도 없이 그 자손들을 생산해내고 있지 않은가. 고색창연하면서도 결코 생동감을 잃지 않는 이 이야기들은 접하면 접할수록 친근함이 느껴지면서도 그때마다 새로우니 아이러닉하다고밖에. 이제는 밑천(?)이 떨어질 때도 되지 않았겠냐고 생각한 건 루나양의 착각이었음을 넌지시 알려주는 두 작품을 만났다.

 이 두 작품의 제목에는 모두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유명한 여성의 이름이 들어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둘의 이름에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극과 극이라고 할 수 있는데, 메데이아와 페넬로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원래 신화에서 메데이아는 사랑 때문에 나라와 아버지를 배신하고, 아버지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남동생을 죽여 그 시신을 바다에 뿌리며, 이아손의 사랑을 잃게 되자 상대 처녀를 독살하고 나중에는 테세우스 신화에도 등장해 그 사악함을 뽐내(?)는 전형적인 악녀로 그려지고 있다. 반면 페넬로페는, 남편 오디세우스가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바다에서 떠돌아다니는 20여 년 동안 기지를 발휘하여 구혼자들을 물리치고 절개를 지친 현모양처로 칭송받는다. 그런데 이토록 다른 두 사람, '마녀' 메데이아와 '정숙한' 페넬로페가 각기 할 말이 있다며 입을 열었다. 도대체 무슨 말이 그토록 하고 싶어서?

 지금쯤 눈치 챘을 테지만, 이 두 작품은 '신화 비틀기', '신화 다시 쓰기'의 결과물이다 ― 모두들 알고 있는 이야기 이면에는 어떤 뒷이야기가 숨어있을까, ‘내 이야기를 써 줘’라고 눈짓을 하는 이 인물은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는 걸까? 이러한 상상력의 자극을 통해 새로이 탄생한 신화는 반(反)신화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참신하면서도 흥미롭다. 다시 쓰인 신화에서 악녀 메데이아는 오히려 국가적인 범죄의 희생양으로, 영웅 오디세우스는 방탕한 거짓말쟁이로 그려진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아무래도 억압받는 여성들의 호소가 아닐까 싶다. 남성 영웅 중심의 신화 속에서 여성은 언제나 그 들러리 아니면, 영웅이 가진 고귀한 덕성에 대비되는 존재로만 그려져 왔다. 아니, 아예 이야기 속에서 아무런 중요한 위치도 차지하지 못하는 인물들보다는 나은가? 어쨌든 신화는 그런 식으로 전승되었고,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의 지위는 너무나 확고해서 움직일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람들이 이야기해왔던 것들을 감히 엉터리라고 부르는 이 여인들은 누구인가? 신화 속 여성의 유형 중 페넬로페가 전자에 해당한다면 메데이아는 분명 후자다. 억울한 것으로 치자면야 메데이아가 먼저일 터. 하지만 『페넬로피아드』에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열두 명의 (이름도 모를) 살해당한 처녀들이 있지 않은가? 한데모인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기란 참으로 힘들다.

 두 작품은 장 구분에 따라 수시로 서술자가 바뀌어 각기 자신의 관점에서 서술한다는 공통점을 가지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와 그것이 불러오는 효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페넬로피아드』의 경우, 페넬로페의 넋두리에 가까운 독백과 열두 명의 시녀들이 부르는 노래들이 교차하면서, 페넬로페에게 점점 공감을 느끼는 한편 시녀 살해 사건의 진상이 어떤 것인지 ― 시녀들과 페넬로페의 진술은 서로 다르므로 ― 의혹은 점점 커져만 간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절대 위트가 부족한 법이 없다. 사실 이 작품에 배어있는 풍자와 유머는 ― 내용의 씁쓸함에도 불구하고 ―유쾌하기까지 하다. 반면 『메데이아』에서는 메데이아 자신과 이아손, 그리고 그녀를 파멸시키려는 아카마스와 주변 사람들의 속마음이 각기 드러나면서, 메데이아를 죄어드는 사악한 계획에 전율하며 그녀가 파멸하는 과정에 하나하나 동참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리하여 결국 그녀가 추악한 계획에 빠져들었을 때, 그것을 하나의 숭고한 비극으로 받아들일 마음까지 갖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 작품에서 그녀의 운명은, 적어도 갈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좋은 비극이 될 요소를 충분히 갖추었다고 믿는다.)

 '신화 다시 쓰기'의 매력은 여기 있다. 이 뒤집어진 신화는 단순히 잘 아는 이야기의 다른 해석을 제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찬란한 신화의 그늘 아래 억눌린 자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 목소리를 통해 독자는 원래의 이야기가 가지고 있던 폭력성을 탐지하고 이야기 속에서 보다 다층적인 의미를 읽어낼 수 있게 된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신화와의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2006/04/19 02:38 2006/04/19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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